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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드림클래스 강사 1년 활동 수기아 이 들 그 리 고 나 2019. 12. 15. 22:39
처음에는 아이들의 학습능력을 키워주어야겠다고 단단하게 다짐했다. 아무래도 학생들이 사교육 대신 선택한 방과 후 수업이었기 때문에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수업의 질에 대한 만족감을 높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의욕을 갖고 나름의 교재 연구와 지도 방법을 강구해 내어 열심히 가르쳤다. 그 날 배운 부분에 대한 복습 차원에서 숙제도 내주고, 기타 주 교재를 보충할 부수적인 학습 자료들도 부지런히 준비하여 나눠주곤 했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이 교실에서 그야말로 나만 '열심'이었다. 학생들은 영혼 없는 표정으로 멍하게 앉아 바라만 보다가 마지못해 끄적거리는 형국이라니! 수업 4회 차 만이었다. '아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구나.'
그 이후로부터 학생들 한 명 한 명씩 관찰했다. 생김새가 모두 다르듯 각각은 독특한 개성으로 무장한 또 하나의 세계였다. 특히나 가르치는 입장에서 이해가 힘들었던 모습들을 면밀히 살폈다. 꾸중하거나 다그치는 대신 그저 아이들의 모습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애썼던 것 같다. 어찌하여 영어 시간에 과학 책을 탐독하고 있는 것이며 그토록 짧은 쉬는 시간마저 놓치지 않고 게임에 열중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지(게임에 대한 요즘 아이들의 열정은 수업 시간과 사뭇 달라 매번 놀라울 따름이었다), 교재에 답은 적지 않고 별안간 희한한 그림들을 그리고 있는 모습에 대해서까지도. 다양한 해석과 이해가 가능했지만 대게 이러한 행동들은 학교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가 부족하여 학습 흥미를 잃어버린 탓에 보이는 회피적 양상이었다. 지식을 전달하여 학급 등수를 올리는 일련의 과정은 가장 먼저가 아닌 맨 나중이 되어도 늦지 않음을, 그보다 우선적으로 자신들 앞에 놓인 당장의 공부를 해야 하는 까닭을 몸소 절실하게 느끼는 절차가 필수적임을 알게 되었을 땐 근 두 달이 지나고 난 뒤였다. 그리고 이 시점은 수업 스타일을 과감하게 개혁하기 시작한 시점과 맞물린다.
학교 안에서만 지내는 시간들이 대다수였기에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들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던 학생들이었다. 게다가 까불다가도 숫자로 점철된 각종 평가들에 알게 모르게 주눅 들어 있던 상태였다. 옆 친구와의 외모,성적 비교에 아주 익숙해져 있었다. 안타까웠다. 그 무렵의 내가 그랬으니까. 어리다고 고민의 크기까지 작은 건 아니라는 걸 난 비록 어른이 되었지만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인생의 시야를 넓혀주고 싶었다. 적어도 성적이 나머지 인생의 전부를 결정짓는 요인은 아님을 일러줄 필요가 있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지금 이 순간에도 탄생하고 소멸하는 직업들이 얼마나 많으며,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한국인들과 지구 반대편 청소년들의 삶, 이따금씩 불만스럽게 느껴지는 이 사회구조가 견고히 유지되고 작동되는 원리 등 가리지 않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 들려주려 노력했다. 이야기로써, 다큐 영상으로써, 사진으로써.
이 전략은 덕을 좀 봤다. 선생으로서 수업을 진행하기가 한결 편해진 것이다. 예상보다 훨씬 더 아이들의 눈빛은 초롱초롱 반짝였고, 귀를 기울여주었다. 지난 시간에 접했던 이러한 에피소드들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연결된 학습 내용까지 모두가 기억하고선 또 다른 인물과 세상의 이야기들을 기다렸다. 나는 더 나아가 이를 토대로 구체적인 꿈을 설정하는 데 도움을 주기로 했다. 평소 웹툼과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학생들에게는 예술고등학교와 애니메이션 고등학교를, 게임으로 먹고살고 싶다던 수줍음 많던 한 남학생에게는 게임 특성화고를 추천하며 입학 요건에 대해 틈틈이 설명했다. 다소 멀게만 느껴졌을 전국의 주요 대학 학부 과정과 특성화고에서 배울 수 있는 전공들에 대한 소개도 덧붙였다. 연기를 하고 싶다던 학생에게 연극영화과의 존재는 책상에 앉아 당장 눈앞에 놓인 문법 문제를 진득하게 풀어보게끔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었다. 이제야 아이들은 비로소 구체적인 비전을 가지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노력을 해야겠다고 느낀 것이다. 확실히 그들의 자세는 학기 초와 달라져 있었다.
학생들은 하나같이 반짝이는 원석 같은 존재들이다. 아이들 얼굴 하나 하나 떠올리자면 저절로 미소가 머금어진다. 모두가 어여쁘고 대견하다. 그렇기에 학생들의 변화 가능성을 믿었고, 그전에 스스로가 먼저 변하고자 했다. 그 결과 처절한 막막함으로 시작되었던 수업이 어느덧 충일하게 마무리되고 있었고, 선생님으로서 그리고 세상을 조금 더 살아본 멘토로서 교실 불을 끄고 돌아올 때마다 마음속 한편에 가득 차오르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는 오늘이 쌓여 고금이 될 뿐이니 내일이 오늘이 되고, 오늘은 어제로 밀려나는 이 사흘의 누적 속에 인생과 고금이 놓여 있다고 했다. 나는 오늘 하루가 가진 힘을 믿는다. 차곡차곡 함께한 배움의 시간들은 어느새 무시 못 할 빼곡함으로 퇴적된다. 그렇기에 내일을 걱정하거나 어제만을 돌아보지 않는다. 그저 이 순간의 중요성을 신뢰하며 학생들과 주어진 오늘을 성실하게 보내고 싶다. 게다가 아이들은 참으로 영특하다. 이런 선생님의 마음을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는 듯한 눈빛을 보내오니 말이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므로 이 글의 결말은 아직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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