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기업에 입사하지는 못했지만아 이 들 그 리 고 나 2019. 12. 15. 23:47
abc초콜릿들이 옹기종기 들어있었던 미성이의 사회과부도 지도 선물.jpg 최근 나는 복작거리는 학생들로 가득한 시골의 한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일을 시작했다. 군 단위의 소재지에 위치한 학원이라 소규모 그룹과외 식일 줄 알았는데, 왠 걸. 근처 읍, 면, 동, 리의 초중고 아이들 모두 우르르 몰려와 이 학원에서 영어뿐 아니라 국어, 수학, 과학, 사회까지 교육받는다. 꽤나 성황리에 운영되고 있는 굉장한 핫플이다. 아주 작은 꼬꼬마부터 목소리 걸걸한 고등학생들까지 가르치고 있노라면 시간이 참 잘 간다. 그래서 감사하고 좋다. 광역시 내 집에서 시골까지 매일같이 통근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박하고 착한 아이들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예상과 다르게아직도 근무하고 있다. 곧 방학이 시작되면 초등학교 아가들에게는 100%회화수업을 진행해 볼 참이다. 잘할 수 있을까? 걱정보단 기대가 더 크다.나는 지방국립대 경영학 졸업 후 공기업을 오랜 기간 준비했지만 입사하지 못했다. 사실 공무원 시험처럼 지극정성으로 온 힘을 다해 서류 준비, 그리고 ncs와 전공필기를 공부한 거냐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막상 자신 있게 최선을 다했노라고 말하진 못하겠다. 그래서 입사하지 못했나 보다(하하) 국책은행 인턴으로도, 지방대학교 정규 교직원으로도 근무했었지만 여러 이유로 퇴사했다. 해내지 못했다는 패배감에 사로잡힌 세월도 꽤 길었다. 지독한 전쟁 같은 사회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무척 힘들어하는 스스로의 모습에 자책도 많이 했었다. 그런데 요즘엔 아니다. 위장이 뒤틀리는 느낌이 사라졌고, 예전의 우울했던 모습들이 서서히 옅어져 가고 있는 것 같다. 다행이다. 그건 선생님이라는(학교 밖)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았기 때문일 것이며, 가르치는 활동 이외에도 부수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일들 속에서 보람과 즐거움을 발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엔 분명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어딘가엔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발견할 때까지 지치지 않고 이런 저런 일들을 경험해 보는 것, 찾게 되었을 땐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정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었다. 내 20대는.
향긋하고 화려한 생김새의 꽃보단 비바람을 이겨내는 평범한 들풀이 더 매력적이다. 물론 자기 자신이란 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존재이지만 남들과는 달리 특별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내 마음가짐을 그렇게 바꾸고 나니 소소한 행복과 성취감이 도처에 있었다. 소위 이름만 들어도 전 국민이 다 아는 공기업에 입사하진 못했지만 그 대신 쓸만한 영어 실력을 끌어모아 여러 나라에서 근무할 수 있었던 지난날들도 감사하게 느껴진다. 역시 모든 일은 일장일단이 있다. 한 없이 좋은 점이라는 것은 없고, 끝도 없이 가라앉기만 하는 인생이라는 건 없나 보다.
내일도 아이들을 만나러 출근한다.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자동 반사적으로 행해야 하는, 구차하지만 필수적인 노동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요즘에 감사하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 그들은 어른들의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충분하다. 하나같이 어여쁘고 개성이 넘치니까.
'아 이 들 그 리 고 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 4화 자제력에 관하여 (0) 2019.12.19 제3화 시간싸움 실전 모의고사(고3) (0) 2019.12.19 제2화 원장님의 불호령 (0) 2019.12.18 제1화 단어 10개 외우기(제발) (0) 2019.12.16 삼성 드림클래스 강사 1년 활동 수기 (0) 2019.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