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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단어 10개 외우기(제발)아 이 들 그 리 고 나 2019. 12. 16. 23:39
따끈따끈한 예비 중등 교재가 도착했다. jpg 현재 학원에서 초중고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잘 따라와 주는 영특한 친구들도 있지만, 영어를 너무 어려워하고 하기 싫어하는 친구들도 있다. 예비 중등반은 그야말로 내게 숙제(?) 같은 아이들이다. 잔인한 비교일 순 있겠지만 초등 6학년 또래들이 지닌 평균적인 학습능력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학생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알파벳 별 대표적인 발음(가령 'f'의 발음은 대다수 'ㅍ'소리가 난다는 것)도 헷갈려하기도 하고, 아주 기초적인 단어를 몰라 간단한 문장을 해석하지 못한다. 주어와 동사를 구분할 줄 모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정규 수업시간에 인칭대명사를 일주일 내내 가르쳐도 소유대명사와 소유격의 차이를 알지 못한다. 'She is pretty.'라는 문장에서 동사를 pretty라고 말하는 아이들... 선생님으로서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즐겁게 수업을 진행할 수 있을까? 매번 고민한다.
영어는 정규 과목이기 이전에 '언어'다. 발음하지 못하면 문법과 독해가 무슨 소용일까? 문장을 만드는 규칙을 이해하고 문장들의 집합인 이야기를 읽고 감상할 수 있으려면 문장을 구성하는 '어휘'의 힘을 풍성하게 늘려가야 하지 않을까?라고 감히 확신해본다. 마치 베틀 그라운드에서 아이템이 많을수록 승리에 유리한 것처럼. 다소 진부한 영어공부 방법론일 순 있겠지만, 부진한 아이들일수록 다양한 예문을 통해 단어의 학습을 유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이들이 단어를 정말 외우기 힘들어하고 싫어한다. 처음엔 15개씩 숙제로 암기해오자~한 뒤 다음 시간에 쪽지 시험을 보면 세 개, 다섯 개를 맞기 일쑤다. 심지어 다 틀리는 학생도 있다. 초반에는 하나를 틀리면 각각 열 번씩 노트에 적게끔 했는데 이것도 한계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적기만 하고, 정작 발음해보라 하면 읽을 줄 모른다. 심지어 스펠링도 모른다. 아마 아무 영혼 없이 그저 기계처럼 적기만 하는 것 같다. 자기 것으로 만드려는 어떠한 노력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이 단어를 앞으로는 알고 있어야겠다는 개념 자체가 없을 만큼 아직 아이들이 너무 어린 걸까? 숙제가 무의미해지는 발견이었다.
그래서 단어를 15개에서 10개로 줄이고, 10개 중에서 정말 외우기 싫은 것들을 제외하고선 "6개만 꼭 맞자 애들아~4개 이상 틀리는 건 선생님과의 약속을 지켰다고 볼 수 없어~."라고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며 때로는 혼도 내가며 공부를 유도한다. 10개를 암기해오라고는 했지만 실상 6개라도 제발 연습해보자는 나의 간곡한 부탁이다.
아마 아이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부담을 덜어주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내일 시험 볼 단어 범위는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가기 전 꼭 발음해준다. 발음기호를 아직 모르기에 한글로라도 발음을 적게 해서 혼자 공부할 때 소리내서 읽기 쉽게끔 도움을 주려 한다. (~에 묻다. 매장하다 라는 뜻의 bury 옆에 붸에리' 라고 한글로 적게 하는 것이다. 가끔 한글로 발음을 적는 것을 창피하다 여기는 친구들도 있는데, 오히려 나는 처음 보는 단어들의 발음이 어려운 것은 당연하니 떳떳하게 한글로 발음을 써보라 한다) 또한, 단어 마다 예문을 각각 읽어주며 그 문장 속에서 자연스럽게 용법과 의미가 와닿게끔 한다. 마지막으로는 각 단어별 품사를 꼭 짚고 넘어가게 한다. 영어 단어 암기의 기본은 뭐니 뭐니 해도 동사가 명사가 될 수도, 형용사가 될 수도, 부사가 될 수도 있는 상황들에 대비하는 품사에 대한 탄탄한 이해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내일은 부디 예비 중등반 아이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여섯 개 이상 단어를 맞췄으면 좋겠다. 진짜 더할 나위 없이 기쁘고 뿌듯할 것 같다. 문법은 아직 하나도 몰라도 괜찮다. 어휘력을 기르는 게 더 중요한 시기니까.
점점 외워야 하는 단어의 개수가 줄어들다가 하루에 5개씩만 외우고 싶다고 칭얼대면 어떡하지?
아니야, 다섯 개라도 제대로 알고 넘어갈 수만 있다면 그렇게라도 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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